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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도착(倒錯)

조각글




골목을 따라 달리는데, 꿈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마을이 하나의 커다란 박제 같았다. 어느 박물관에서 본 토끼 박제가 떠올랐다. 보형물에 의지해서 가까스로 모양을 유지하던, 이미 죽었는데도 다시 죽어버릴 것만 같던 토끼였다.

낡은 수도원 건물 앞에 다다라, 나는 잠시 멈추어 섰다. 목재가 갈라진 곳마다 눅눅한 바다 냄새가 스며있었다. 언제나 비리고 습한 바닷바람이 가득했던 마을이다. 남풍이 불 때면 꼭 온 마을이 오롯이 바다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와 내가 영영 이곳을 떠나길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안에 떠밀려오는 고물들처럼 돌아오고야 만 것은.

나는 말 그대로 파도에 떠밀리듯이 걸음을 떼었다. 어디로 가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저절로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무작정 달려서 닿은 곳은 경당이었다. 너무 낡아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버려진 건물이지만 수도원 아이들만큼은 줄기차게 드나들었었다. 친구를 따라 단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불가사의하게도 그가 그 안에 있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의 능력과는 별개로, 어떠한 직감 같은 것이었다.

경당의 문을 열자, 제대 왼편에 난 창에서 저물녘 햇살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유달리 비가 새는 창이라 검게 얼룩덜룩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그것마저도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가슴이 울렁거려,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뽀얀 먼지가 새어든 햇살을 따라 너울너울 떨어지고 있었다.

먼지가 내려앉는 곳으로 시선을 내렸다. 거기에───있었다. 마치 아주 오래된 사진에 담겨 있을 법한 모습으로.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찌할 수 없어 벽을 짚었다. 입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혼곤히 잠든 것처럼 눈을 감은 친구의 얼굴엔 흉터자국 하나 없었다. 꼭 상처 입기 전으로 시간을 전부 되돌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얼마나 거슬러 올라간 것일까? 그는 겨우 열일곱이나 되어 보였다. 나는 내가 이미 죽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서자 그가 눈을 떠 나를 보면서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파충류의 동공, 빛나는 금색의 홍채. 그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 활활 타고 있는 삶의 불구덩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퍼스트란 것도 사실은 별 게 아니지.”

내가 일으켜 주려 손을 내밀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봐. 난 풀 한 포기 살려내지 못했어.”

친구는 이제 금방이라도 꺼져 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런 주제에 나가 떨어져서 일어설 수도 없다니 우스워.”

그때 창문들이 일제히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몸을 한층 낮추고 천장에서 실낱처럼 흘러내리는 먼지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방금 그 진동이 기체가 마을 안으로 진입해서 일어난 것이라면 이제 더 이상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이 여기로 오고 있어.”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덧붙였다.

“널 죽이려는 거야.”

그러자 그가 웃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벌이기도 훨씬 전부터, 이런 식으로 죽게 될 자신의 모습을 몇 번이고 그려봤던 것이다.

나는 그의 양어깨를 붙잡고 사정하다시피 외쳤다.

“돌아가자. 돌아가서 뭐라도 해보자.”

틈을 주지 않고 두 번째 진동이 왔다. 그의 무감동한 표정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흙먼지에 잠시 흐려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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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
꽃의 초상 中 바다에서
#17
소설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