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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초상 中

조각글



“어, 어떡하지? 나한테 얘길 안 하고 혼자 나갈 애가 아닌데….”

“찾을 수 있을 거야. 일단 좀 닦아.”

나는 마른 수건을 내밀면서 말했다. 그는 그제야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급히 모아 쥐었다.

“고마워.”

친구는 머리를 닦으면서 바닥을 의식했다. 그가 지나온 자리마다 물기가 가득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둘러보자. 얼마나 멀리 갔겠어. 고작해야 이 근처지.”

“…알겠어.”

우산을 챙기기 위해 주변을 뒤졌지만 하나 밖에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와 함께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그사이 더 궂어져서 이제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빗소리가 요란했다. 우리는 우선 수도원 주변부터 돌아보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그 애를 더 약하게 만들었나봐.”

“그게 왜 네 잘못이야.”

나도 모르게 살짝 목소리가 커졌다. 감당할 재간도 없으면서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건 그의 오랜 버릇이었다.

“마리아 잘못은 아니잖아.”

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얼굴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나는 그에 대고 선뜻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아픈 애인 걸 어쩌겠어.”

긴 침묵 끝에 겨우 그렇게 위로했을 따름이었다. 그때, 그가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어딘가 멀리 시선을 고정시켜둔 채였다.

“라파엘?”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얼결에 따라 쳐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멈춰있는 사이에 그가 먼저 걸음을 떼었다. 그리곤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가 우산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차마 막지 못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친구가 지나간 자리에 커튼을 쳤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질 정도로 세차게 오는 비였다. 바람 때문에 똑바로 세워지지도 않는 우산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그를 뒤따랐다. 조금 다가가니 그제야 겨우 담을 등지고 웅크려 앉은 마리아가 보였다. 그는 저 작은 아이를 멀리서도 단숨에 알아본 것이다. 아이가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친구에게 안기는 것을 보았다. 친구는 마치 수양버들처럼 등을 구부려 아이를 껴안았고, 그 위로 비는 계속 쏟아져 내렸다.

나는 차마 그들에게로 달려갈 생각도 못하고, 먼발치에 멀거니 서있었다.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너무나 작은 것 같았다.



시간성의 뱀, 꽃의 초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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